기획

전기차 한파 딛고 AI·ESS로 피벗하는 동박업계

전기차 수요 둔화로 긴 터널을 지나온 국내 동박업계가 AI 데이터센터와 ESS 수요를 새 성장축으로 삼아 사업 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두산 전자BG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이 전환이 어떤 의미인지 짚어봅니다.

전기차 한파 딛고 AI·ESS로 피벗하는 동박업계

전기차 캐즘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만큼, 국내 동박업계는 꽤 오랜 시간 수요 공백과 싸워왔습니다. 배터리용 동박 수요가 기대치를 밑돌면서 가동률이 낮아지고 실적 눈높이도 계속 낮아지는 흐름이었죠.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기차 대신 AI와 ESS라는 새 수요처가 윤곽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020150)는 AI 가속기·서버용 고성능 PCB에 들어가는 회로박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엔비디아 공급망과의 연결 가능성도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물론 엔비디아 관련 공식 인증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고, 현 시점에서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방향성 자체는 뚜렷합니다.

두산 전자BG의 사례는 이 전환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숫자로 보여줍니다. 하이엔드 CCL(동박적층판)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73%에서 지난해 82%까지 올라왔습니다. CCL은 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기판 소재입니다. 데이터센터 투자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고성능 CCL 수요는 단기 이슈가 아니라 구조적 성장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ESS 쪽 수요도 함께 체크해 둘 포인트입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화 수요가 맞물리면서 대형 ESS 설치가 늘고 있고, 여기에 들어가는 배터리 셀에도 동박이 필요합니다. 전기차처럼 수요가 한 방향으로 쏠렸다가 꺾이는 구조가 아니라, AI 인프라·전력 인프라라는 두 축이 동시에 받쳐주는 형태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물론 실제 수요 반영이 실적으로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고, 업체별 전환 속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이슈를 볼 때 한 가지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동박업계의 피벗 스토리는 분명 흥미롭지만, 전기차용 동박 재고와 가동률 압박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AI·ESS향 매출 비중이 실적 전체를 견인할 수준으로 올라오기까지의 시간차, 그리고 고성능 CCL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테마로서의 재료 강도는 충분하지만, 실적 반등의 속도와 폭은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동박업계의 'EV에서 AI·ESS로'라는 축 이동은 단순한 테마 갈아타기가 아니라 실제 수요 구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회로박 증설, 두산 전자BG의 하이엔드 CCL 비중 확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반기 실적 발표 시즌에 이 전환이 숫자로 얼마나 확인되는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각 사의 AI·ESS향 매출 비중 변화와 고객사 다변화 공시를 꼼꼼히 체크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방향은 맞는데 속도가 관건인 이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