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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달러예금 급증, 당국 개입의 한계를 보여주다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한 가운데, 5대 은행 법인 달러예금이 5영업일 만에 10억 달러 이상 불어났습니다. 당국이 은행권을 소집했지만 구조적 달러 수요 앞에서 뾰족한 카드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업 달러예금 급증, 당국 개입의 한계를 보여주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법인 달러예금 잔액이 지난 5일 기준 524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지난달 말 대비 5영업일 만에 10억 달러 이상 늘어난 수치이고, 사흘 기준으로는 1조 6천억 원어치에 해당하는 달러가 시장으로 나오지 않고 기업 계좌 안에 잠겨 있다는 의미입니다. 숫자 자체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이 달러가 왜 나오지 않느냐는 부분입니다.

핵심은 기업들의 환차익 기대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중반대를 반복적으로 테스트하는 상황에서, 수출 대금이나 해외 자산으로 달러를 보유한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환전하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환율이 더 오르지 않을까'라는 심리가 달러 공급을 틀어막고 있는 셈입니다. 이건 은행이 의지를 갖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당국이 은행권을 소집한 것은 이른바 '스무딩 오퍼레이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외환 매도 개입 외에도 시장 참여자들에게 경계 신호를 보내고, 은행들이 과도한 달러 매수 포지션을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수요 측 압력이 기업 섹터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된 경우에는 구두 개입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시장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거시 배경도 당국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미 연준의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면서 달러 강세 기조 자체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고, 코스피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의 급락을 경험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도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환율 상승 → 외국인 매도 → 주가 하락 → 추가 리스크오프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 국면입니다. 기업 달러예금 증가는 이 사이클의 한 단면입니다.

체크해 둘 포인트는 이 달러 공급 잠금 현상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입니다. 기업들이 환차익 기대를 접고 달러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하는 시점, 즉 '네고 물량(수출업체 달러 매도)'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시점이 환율 흐름의 변곡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환율이 추가로 더 오르면 달러 예금 증가세가 더 가팔라질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방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글로벌 매크로 변수, 특히 미국 금리 경로와 연동되어 있어 가시성이 높지 않습니다.

금융주 투자자라면 이 상황이 단순히 환율 이슈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게 좋습니다. 고환율이 장기화될수록 기업들의 원화 환산 조달 비용이 올라가고, 차입 의존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재무 스트레스가 누적될 수 있습니다. 은행권 입장에서도 외화 유동성 관리 부담이 커지는 국면입니다. 지금 당장의 주가 충격보다 이런 2차 파급 경로를 함께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지금은 당국의 의지보다 시장의 기대 심리가 앞서 있는 국면입니다. 환율 방어선이 어디서 형성될지, 기업들의 달러 보유 심리가 언제 돌아서는지를 조용히 모니터링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습니다. 급하게 결론 내리기보다는 데이터 흐름을 따라가는 것, 지금은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